2019.6.26 수.


 오늘은 선교센터 엔젤스 홈의 아이들을 만났다. 그들은 모두 고아들이며, 선교사님 밑에서 자라고 있다. 일부는 에이즈에 걸려있기도 하다.


우리도 사역을 했지만,

그들도 사역을 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모두 명랑하고 쾌활했다. 그 중에는 낯을 가리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우리를 따뜻하게 환영해주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이들도 우리가 오는 것이 두려웠다고 한다. 당연히 그랬을 것임에도 그 사실을 마뿌씨가 이야기 해주기 전에 알지 못한 내가 참 한심스러웠다. 우리도 사역을 했지만, 그들도 사역을 했던 것이다.


우리와 전혀 다를 것이 없었던 엔젤스홈 아이들

그냥 하루종일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야기를 하고,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게임을 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엔젤스 홈의 아이들도 나와 다를 것 없이 모두들 꿈을 꾸고, 매일매일을 열심히 살아가며 티비와 영화를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꿈이 없는 아이도 있다는 점까지 한국의 아이들 혹은 세계의 아이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죽음 앞에서 절망이 아닌 꿈을 찾는 아이들

마지막, 헤어지기 전에 담임목사님께서 설교를 해주셨다. 나는 늘상 들어 알고있는 ‘네 마음에 그림을 그려라’는 주제의 말씀이었다. 20년 뒤의 모습을 선명하게 자신의 마음에 그리면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그대로 이뤄주신다는 것이다.


 엔젤스 홈의 아이들은 그 말씀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마다 자신의 꿈을 그렸을까? 아니면 나처럼, 명확하게 그 꿈을 그리지 못하고 백지로 남겨두었을까. 마티는 스튜어디스, 스노우이는 의사, 말레부야는 가수, 음뽀는 음악 프로듀서가 되고 싶다고 했었는데 아마도 그들은 자신의 20년 뒤의 모습으로 그것을 그렸을 것이다. 꿈이 없다고 했던 마뿌씨는 아마도 자신의 꿈을 명확히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을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 중에는 자신이 에이즈에 걸려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에이즈에 걸려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꿈을 꾼다는 것은 무엇일까. 꿈을 꾸지만 죽음 때문에 꿈을 이룰 수 없는 그런 병에 걸려있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일까. 나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미래에 있는 죽음을 오늘로 당겨오면 현실에 충실할 수 있다고 한다. 죽음으로 자신을 투사하는 것이 삶에 생명력을 줄 수 있다고. 나는 이 말에 지금까지는 동의해왔다. 그리고 지금도 동의한다. 그러나 진짜 죽음이 내 눈앞에 놓여있다면, 그래서 내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음이 철학적 투사가 아니라 실제의 현실 그 자체라면, 나는 현실에 충실할 수 있을까?